아가에게

분류없음 2012.12.11 15:51

 

 

아가 지금 쯤 아빠와 온 집을 기어다니며 놀고 있겠구나.

엄마가 요 며칠 너와 떨어져 있는 때가 잦아졌지.

왜 그러는 지 너에게 변명을 하려고 해.

 

네가 이 세상에 온 이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있었는데. 정말 젖먹던 힘을 다해 ,널 젖먹여 키웠는데 말이야. 엄마 혼자 만의 힘으로 널 온전히 키워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

 물론 지금이야 엄마와 네가함께 있는 게 제일 좋지.

조금 더 지나면, 네가 아장아장 걷게 되고 또 말도 하게 되고 친구와 놀 줄 알게 되면 어린이 집도 가고 유치원도 가게 되겠지.

 

바로 이틀 전 우리동네 성당 부설 유치원에 원생을 뽑는 추첨을 하더구나. 이웃의 네 살 누나는 다행히 붙었지만 .열명 남짓 뽑는데 80명도 넘는 아이 엄마들이 그 곳에서 추첨을 했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곳에 가질 못했어. 더 먼데, 더 비싼데를 알아봐야 할테지. 네 살 밖에 안됐는데 벌써 어딘가에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아이들을 보며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더구나.

 

엄만 널 뱃속에 넣고 저기 부산영도까지 크래인 위의 진숙이모를 보러 막 왔다갔다 할 만큼 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 아가 널 낳고 나니 엄만 많은 게 두렵단다.

네 몸과 마음이 그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인데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참 큰 바램인 상황이야.

네가 갈 안전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결국 못 찾으면 어쩌나,학교에가서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라도 당하면 어쩌나, 아니 네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따돌리는 걸 먼저 배우면 어쩌나., 성적에 목메 죽고 싶게 괴로운 학창시절은 보내면 어쩌나, 만일 대학을 포기했다고 해서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야하거나 네가 하는 노동이 싸구려 취급 받으면 어쩌나..

아가 엄만 매일 매일 이런 상상을 하고 또 스스로 마음을 다잡곤 해.

 

그래서란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 자리에 섰단다.

 

엄마가 살아가고 네가 살아가야할 이 세상이 온통 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로 변해 버린 걸 그냥 볼 수 만은 없었단다. 자연은 파괴되고 아이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자살을 하고,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없으며 노인들은 자기 몸 편히 누일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사회. 너무 미안해서 이대로 너에게 물려 줄 수는 없었단다.

 

엄만 네가 행복한 아이가 되길 바래.

네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잘하든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학교에서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고 네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 어떤 이유에서든 차별은 나쁜 것임을 배웠으면 좋겠어. 경쟁하고 이기는 법이 아니라 함께 연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웠으면 좋겠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배워 군사 독재 시절의 아픔과 민주화 과정의 많은 희생을 알게 되면 좋겠어.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 그리고 아가..난 네가 청년이 되었을 때쯤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대륙을 건너 유럽까지 여행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더 이상 너와 같은 얼굴, 같은 말을 배우는 북쪽의 아기들이 굶주리다 죽어가는 일도 없고, 어떤 전쟁의 위험도 다 끝이나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 말 하다 보니 엄마의 꿈이 참 크다. 참 또 하나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엄마가 다시 티비에 나오고 네가 그걸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원래 연기를 하던 배우라는 걸 네가 알면 좋겠다.

아가. 널 위해, 그리고 엄마 자신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서있어.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투표의 권리를 행사 할 거야.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 그 초석이 될 선택을 할 거야. 그렇게 아주 조금씩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에 참여 할 거야.

아가. 지금 잠시 떨어져 있어 미안해. 네 웃고 찡그리는 얼굴이 벌써 눈앞에 삼삼하다. 금방 갈게. 사랑해. 아주 많이.

201212월 겨울, 18대 대통령선거 기호 2번 문재인 대통령후보 광화문 유세현장에서..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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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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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빗 2012.12.11 1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2. BlogIcon 딸기21 2012.12.11 16: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3. 이빠진동그라미 2012.12.11 1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집니다~
    핫팅요~~~

  4. 김상회 2012.12.19 0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찬조연설 잘 봤어요.

    멋진 삶이 그대로 녹아흐르는 연설이었습니다.

    역시 삶이 녹아 있는 말은 설득력이 강하더군요.

  5. 불량뚜비 2012.12.19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찬조연설 잘 보았습니다
    너무 감동적이더군요 ^^

  6. 조수만 2012.12.19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여진님 당신이 이시대의 깨어있는 진정한 용기있는 배우 입니다~
    지금 투표 하고 왔읍니다
    내일은 더 멋진~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 변해 있겠지요~
    아가야 이쁘게 키우시고 멋진 배우로 많은 활동 하시길.........
    .
    .
    .
    영원한 골수펜~

  7. 박기철 2012.12.21 1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약자편에서계시는김여진씨존경하고사랑합니다

  8. 박기철 2012.12.21 1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약자편에서계시는김여진씨존경하고사랑합니다

  9. 박기철 2012.12.21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약자편에서계시는김여진씨존경하고사랑합니다

  10. 늦봄 2012.12.21 2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지 낭독하실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따뜻한 마음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11. 늦봄 2012.12.21 2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지 낭독하실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따뜻한 마음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12. 애사랑 2013.01.07 1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 많으십니다. 이렇게나마 응원합니다.홧..팅!!......꾸벅^^!!

  13. 봄은올꺼예요 2013.01.09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을 읽으면서 왜 엄마가 더 현명하고 사회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알것 같습니다. 이번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내 능력 부족에 비정규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란것과. 또 이번에 새로운 시도로 인해 좌저을 겪었지만.. 희망도 보았다는 것.. 여전히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래도 세상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보아야겠지요.. 아이에게 틀렸어가 아닌 다름을 이해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이들까요..

  14. 김영균 2013.01.09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심히 꿋꿋하게 힘내세요

  15. BlogIcon 벌침이야기 2017.09.14 1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이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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